“학생들의 실망을 통한 민원제기와 불만사항의 제기가 없도록 다시 한 번 모든 교수님들의 책임점검 및 협조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00대학 교무처장 배상-1
올해 나는 숙련된 학생에서 막 초짜 선생이 됐다. 지난 학기 학생이었던 습성이 선생의 역할을 앞서지만 처음이라는 말로 지금의 형편을 대신하긴 부족하다. 긴급 공지 알림이 빈번하고 계획의 변경만이 계획대로 이행된다. 아직 이 충격의 여파는 진행 중2이며 나는 학습자와 교육자의 경계에서 코로나19가 예술 교육의 특수성에 미친 파장을 겪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 개인을 예술가로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은 면대면 Face to Face 방식으로 각 예술이 가진 속성과 비물질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차원의 고유한 가치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새로운 전제를 준다. ‘서로 마주하지 않고’ 이 특별함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교육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요구한다.
상대적 학생 시점3
“원래 예술은 혼자 알아서 하는 거야” 강조하던 선생의 말이 문자 그대로 펼쳐진다. 사태의 심각성만큼 선생과 학생 모두 자율성에 순응한다. 그래도 이론 교육은 비교적 정보전달의 효율과 그 책임이 분명하다. 대체로 이론 과목은 수강인원에 따라 비대면 수업 방식이 정해지고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수업의 경우 녹화 영상 수업으로 진행한다. 교육자는 정제된 언어로 압축된 정보를 담고 학생은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 과정에서 배속 조절과 스킵 skip이라는 학습 큐레이팅 기술은 선택사항이 된다. 3~5명의 소규모로 이루어진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나타난다. 분석과 비평 같은 수업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보충하는 시청각 자료를 즉각적으로 화면에 공유하면서 이해도가 높아졌고 스마트한 채팅창 토론은 이동에 따른 물리적 시간과 비용을 감축한다. 전달의 최적화가 수용의 효용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지만 수업은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실기 과목은 상황이 복잡하다. 학습자 간의 협동, 시설과 장비가 필수인 수업에서 그 구성 자체를 이룰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졸업을 위한 영화, 연극의 준비는 더디다. 장비는 묶이고 촬영은 미뤄지고 코로나 감염 추세에 따라 무대 제작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다. 실내공간에서 많은 호흡과 움직임이 요구되는 합주와 군무, 연기 연습은 금지된다. 상황이 조금 호전되면 위생 점검과 인원 제한 규정을 지켜가며 겨우 착수하지만 이내 멈춘다. 물론 타장르 간의 융합과 협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악기를 다루거나 몸짓과 표정이 중요한 실기는 선생의 예시가 담긴 녹화 영상을 보여준다. 학생은 그에 따라 연습하고 다시 녹화하여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몸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은 십시일반 갹출하여 사설 연습실을 빌리기도 하지만 마스크를 쓴 몸짓은 이내 호흡이 가빠지고 리듬을 찾기는 쉽지 않다. 또 다른 실시간 온라인 실기 수업은 음악과 영상을 함께 나누지만, 감상은 개별이라 개인이 머문 자리의 편안함만큼이나 집중은 힘겹고 건너뛰기에 자꾸 손이 간다.
예전 EBS에서 그림을 알려주던 밥 로스 Bob Ross는 그림을 그리고 “어때요, 참 쉽죠?”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배우는 입장에서는 늘 따라가기 버겁기만 했던 기억이 지금과 묘하게 겹친다. 어떻게든 계속하기 위한 궁리는 한계에 부딪힌다. 화면 안에 가득 찬 정보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한 이해가 남고 같은 장소와 시간에서 보고 느껴야만 알 수 있는 세세한 왕래는 디지털의 얇은 화면 안에 갇힌다.
주관적 강사 시점
나는 모 대학에서 ‹미적 실천과 구성›이란 수업을 맡고 있다. 강의명이 무색하게 실천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일단은 맡은 바 책임이 먼저다. 녹화 영상 수업, 실시간 온라인 수업, 대면 수업 세 유형을 두루 거치며 늘어난 유형만큼 내 업무량도 불어난다.4 녹화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여분의 말을 제거한다. 평소 수업 속 학생의 질의와 대화에서 풍성해지던 시간은 제거되고 강의자인 나만이 일방통행식 정보를 주입한다. 상호적으로 작용했던 긍정의 호흡은 사라지고 고효율의 건조한 수업을 녹음하고 객쩍은 정보는 모니터링 과정에서 삭제한다. 그러나 이 검열은 나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학생에게도 적용된다. 이 학교의 온라인 학습 시스템 LMS는 학생의 총 학습 시간과 언제 보고 끊었는지, 다시 본 시점 등의 데이터를 강사에게 보고한다. 난 학생의 학습 시간이 강의 시간보다 짧은, 출석 체크용 시청임을 인지한다. 어차피 자율 학습이지만 “이해가 안 돼요.”라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데이터화된 문서 앞에 나는 선생에서 감사(監査) 요원으로 돌변한다. ‘나는 네가 지난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안다’는 말이 내 입속을 맴돈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서는 일종의 오싹함을 느낀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는 감각이 깨운 기이함이지만 발표가 빈번한 내게 시선이 두려워 생긴 흔한 현상은 아니다. 한눈에 들어 올 수 없는 모든 이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30명의 학생 수에 맞추어 동일한 크기로 분할된 프레임 속 60개 눈을 발견하지만 제대로 식별할 수 있는 학생은 없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비칠지 셀프 화면에 눈길이 간다. 음성의 동기화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 소리, 주변 카페의 노이즈, 피시방, 길거리, 청소기 소리 등이 뒤섞인다. 동시적 음성은 비동시적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다수의 마이크는 꺼져야 한다. 분명 같은 시간 함께 접속해 있지만 함께 있지 않고 1:1의 지목 대화가 아니면 이야기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활발한 의견수렴은 침묵을 통한 동의로 나타날 뿐이다.
평가는 지옥이다. 모든 미적 결과물의 질료적인 특성은 스크린으로 축소되고 질적 차이를 구분해내기 위해 애를 쓴다. 다른 창에서는 학생이 보낸 디지털 과제를 더하고 축적한 수치를 등급 분포에 맞춰 균등하게 배분한다. 다른 것도 같아 보이는 당혹감만이 남는다.
언젠가 이번 사태는 진정되고 우리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겠지만 이 비대면 체험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제 예술 교육은 손에 닿으면 볼 수 있는 유튜브처럼 어디서나 꺼버릴 수 있는 낯익은 디지털 스크린이 됐다. 이미 비대면의 소통은 일상이고 교류는 사무화 되어있다. 소위 인간적이라는 것은 껄끄럽고 그것을 차단 screening 한 장치 간의 소통은 매끄럽다. 마찰 없는 교환을 추구하는 환경 속에 예술은 비로소 홀로 해야 하는 수행이라는 것을 인증한다. 앞서 온라인 수업의 이점을 알려준 이도 서로가 쌓아 올린 물리적 시간 없이 단지 채팅만을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다. 불필요한 소모를 줄인다는 점에서 디지털 예술교육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질적인 교류들이 사라진 곳에서 예술이 가능한가다. 지금의 각 예술은 충동에 매달리도록 잡아끄는 미끼, 조회 수를 ‘빨 수 있는’ 눈 호강, 귀 호강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이 동질화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길에는 여전히 인간적인 차원의 마찰이 필요하다.
1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한 대학에서 코로나 19 관련 긴급 문자 메시지 중 일부분.
2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 일대의 집단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다시 확진자가 증가세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시점에서 글을 쓴다. 일부 학교는 2020년 1학기 전체를 비대면 강의 전환하여 운영 중이다.
3 한국예술종합학교 2020년 1학기 수강 중인 재학생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동문께 감사를 표합니다.
4 녹화 수업의 경우 완성된 녹음본과 비교해 2·3배의 시간이 더 든다.
예) 1시간 강의는 2시간 녹음하고 1시간 정도 편집과 모니터링한다. 실시간 온라인으로 개별 크리틱 수업을 진행 시 기존 수업 시간의 평균 1.5-2배 정도의 시간이 증가한다.
-K'ART Magazine vol.34에 올린 글-